2015년 11월 23일 월요일

[책 소개] 판결을 다시 생각한다



김영란, 판결을 다시 생각한다: 한국사회를 움직인 대법원 10대 논쟁, 창비(2015)

변호사 생활을 하면서 담당 사건의 판사가 어떠한 생각을 하고 있는가 나아가 대법원을 구성하는 대법관들은 어떠한 생각을 하고 있는지 궁금해지곤 합니다. 특히 "판사는 판결로 말한다"는 격언은, 판결 이외에 언론 등을 이용해서 선고된 판결에 대해서 심지어 그 당해 판결의 판사 조차도 왈가왈부하는 것이 부적절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렇지만 우리나라 최고 지성들의 상당 부분이 지망하여 근무하고 있는 판사라는 직역의 사람들의 생각은 판결문이라는 제한적인 형식과 내용만으로 담아 내기에는 부족한 측면이 있고(현직에 있는 판사님 중에는 문유석 부장님이 활발히 칼럼, 저서 등으로 활동중이신 편입니다 관련 포스팅은 [책 소개] 판사유감), 현직에서 물러난 분들의 말씀이라면 뒤늦게나마 경청할 가치가 있습니다. 변호사라는 직업인으로서는 더욱더 이미 지나간  사건이더라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내려지게 된 배경이나 그 의미에 대해서 곱씹어 볼 시간을 갖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런 점에서 김영란 전 대법관(김영란 대법관님의 종전 칼럼 내용으로 포스팅한 적도 있었네요. 제너럴리스트로서의 법조인)께서 자신이 관여한 중요 대법원 사건들에 대하여 서강대학교에서 강의하시면서 이를 토대로 쓰신 이 책은 읽어볼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변화하는 사회에서 최고법원으로서의 법률해석이 어떠해야 하는지부터, 실제 대법원 판결이 내려지기까지 어떠한 근거와 자료들이 모아지는지, 실제 대법관들이 합의를 하고 판결을 내리는 과정까지 실제 대법관으로 근무하였던 사람이 아니라면 할 수 없는 이야기들을  이책은 비교적 쉽고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만약 로스쿨생이나 법조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인용된 판례들을 찾아서 읽어보는 것이 좋은 공부가 될 것입니다.

다음은 인상깊었던 부분들입니다.

다수의견과 반대의견을 결정적으로 가른 것은 실질과 형식의 문제였다. 죄형법정주의나 조세법률주의 등은 법이라는 엄격한 형식을 갖추지 않고 형사처벌을 하거나 조세를 부과하는 것을 막기 위한 원칙이다. 엄격한 형식주의가 개인의 기본권을 보호하는 데 중대한 역할을 해온 것이다. 형식을 무시하고 실질을 들여다 본다는 것은 법률의 자의적인 적용을 불러올 수 있으므로 그만큼 위험할 수도 있다. 그러나 형식을 가장해 추구하는 실질이 명백히 드러난 경우까지 형식주의만을 추구하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는지에 따라 실질을 취하기도 하고 형식을 취하기도 하는 법률 해석의 전례로 보면 이는 전체적인 제도의 취지와 입법의 목적 등을 고려해 선택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김영란, 판결을 다시 생각한다, 창비(2015), 72-73면.


"나는 당신이 쓴 글을 혐오한다. 그러나 당신의 생각을 표현할 권리를 당신에게 보장해주기 위해 나는 기꺼이 죽을 준비가 되어 있다." 이것이 볼떼르의 말인지 아닌지는 여전히 논란거리지만 표현의 자유와 관련해 역사적으로 가장 유명한 말 중 하나이다.
-김영란, 판결을 다시 생각한다, 창비(2015), 79면.

명예훼손과 관련된 우리나라의 법제는 두가지 특징을 지니고 있다. 첫째는 민사상 책임 뿐 아니라 형사상 책임까지 함께 물을 수 있다는 것이다. 국제적으로는 명예훼손에 대해 형사상 책임을 묻는 제도는 거의 폐지되거나 사문화되었다. 다만 일본은 우리처럼 민형사상 책임을 함께 물을 수 있고, 독일은 진실임을 증명하지 못하는 비방에 대해서 형사처벌하는 규정을 가지고 있다.
-김영란, 판결을 다시 생각한다, 창비(2015), 86면.


사립학교의 설립 및 운영의 자유는 학교법인이 자신의 정체성을 외부의 간섭 없이 자율적으로 결정할 자유를 포함하며, 이는 학교법인의 정체성을 구체적으로 실현하는 이사들을 자율적으로 선임할 자유로 이어진다. 사립학교법에서 학교법인의 설립자가 설립 당초 이사를 정관에 정하도록 하고, 이사회가 다음 이사를 선임하도록 하여 이러한 자유를 법률로써 구체화한 것은 학교법인의 이러한 특수성에 기인한다는 것이다.
-김영란, 판결을 다시 생각한다, 창비(2015), 143면.


미국 하바드대학교 로스쿨 교수인 앨런 M. 더쇼위츠는 한 칼럼에서 ..."법률분야는 독창성을 보이면 오히려 실점을 당하고, 누군가 다른 사람이 먼저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는 사실을 거론해야만 득점을 하는 직업이기 때문에 노벨상이 없다", "법분야에서 창의성은 주로 과거의 사건들을 분석하여 장애물을 우회하거나 법 자체를 확대 적용하는 것을 의미한다."라는 비꼬임 섞인 지적을 한 바 있다.
-김영란, 판결을 다시 생각한다, 창비(2015), 149면.


.. 대법원의 변론기일에 참고인으로 나온의사는 여성이냐 남성이냐의 문제는 더이상 염색체의 문제가 아니라 성적 분화를 일으키는 뇌의 특정 부위에서 일어나는 문제라고 설명했다. 
-김영란, 판결을 다시 생각한다, 창비(2015), 178-179면.


이 가운데 가장 유명한 이야기는 아리스토파네스의 사랑의 기원에 관한 것이다. 그에 따르면 원래 인간에게는 세가지 혼합된 성이 있었다고 한다. 남성-남성, 여성-여성, 그리고 남성-여성이 혼합된 성이 그것이다. 이들 혼합된 성의 인간은 팔과 다리가 각각 네개이고 얼굴은 두개이며 전체적으로 둥글게 생겼고, 빨리 달릴 때는 여덟개의 손발로 스스로를 지탱하면서 빙글빙글 움직였다고 한다. 이들은 힘과 활력이 엄청나고 자부심도 대단해서 신들을 공격하기도 했으므로, 신들은 인간들이 못된 짓을 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그들을 반쪽으로 나누었다는 것이다. 그때부터 나누어진 반쪽들은 원래 자기자신이던 또다른 반쪽을 갈망해 하나가 되고 싶어하는데, 이전에 남녀 양성이 결합되었던 인간은 서로 다른 성에게 끌리지만 남성이나 여성끼리 결합되었던 인간은 같은 성에 끌리게 된다고 했다.
-김영란, 판결을 다시 생각한다, 창비(2015), 180-181면.


앤서니 케네디 대법관이 집필한 다수의견에서 내가 특히 공감한 부분은 "불의의 본질은 우리가 살고 있는 시기에 그것이 우리의 눈에 바로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에 있다."...
-김영란, 판결을 다시 생각한다, 창비(2015), 185면.


사회 통념, 사회 질서, 경험칙은 조리를 다른 말로 표현한 것이다. 결국 조리란 법관들의 관점이 아니라 일반인들의 상식에 부합하는가의 관점을 말한다.
-김영란, 판결을 다시 생각한다, 창비(2015), 20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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