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4월 22일 화요일

수학여행을 없애는 게 대책인가


[이훈범의 세상탐사] 이참에 없애자, 수학여행
중앙선데이, 2014. 4. 20.자

세월호 참사로 인하여 언론의 오보 등으로 말이 많은 가운데, 수학여행 가다가 사고가 난 것을 탓하며 수학여행을 폐지하자는 분들을 종종 보게 됩니다. 위에 인용한 칼럼도 그런 취지입니다. 내용을 살펴보면 인터넷시대에 수학여행과 수련회,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같은 집체교육은 전체주의의 시대착오적 산물이요 고질적 지연 학연주의의 증폭기일 뿐이므로 없애자는 취지입니다.

세월호 참사로 인해 수학여행 가던 학생들이 사고를 당한 것은 가슴아픈 일이고, 그러한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선박 점검절차를 재검토하고 미흡한 점이 무엇이었는지 확인하고 개선하고, 선박탑승시 비상상황에 대한 교육은 필수적으로 하도록 강제하고, 정부의 대응이 미흡했다면 관련 책임자에게 책임을 물으면서 정부대응 매뉴얼을 상세히 마련하고, 언론의 보도에 문제가 많았다면 그 역시 책임자에게 책임을 물으면서 언론보도 지침이나 매뉴얼을 상세히 마련하는 등의 조치를 취해야 합니다. 그렇지만 수학여행 폐지라니 이건 방향을 잘못잡아도 한참 잘못 잡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생각이 왜 잘못되었는지는 다음과 같은 예에 대해서 저 의견을 가진 사람이 반론을 할 수 있는지만 보아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만약 효도관광을 가던 버스가 대관령에서 전복되어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사고가 나서 버스에 갖혀 수십명의 할아버지 할머니가 돌아가는 사고가 났다" 그렇다면 우리는 효도관광을 없애 버려야 한다는 결론이 납니다. 이 예에서 사고의 문제가 효도관광이 아니듯, 세월호참사에서도 사고의 문제는 수학여행이 아닙니다. 경주 마우나 오션 리조트 사건 또한 단체 오리엔테이션이 문제가 아닙니다. 폭설을 예측치 못하고 강당 지붕을 약하게 지은 리조트 공사업자, 관련 감독기관의 안전조치 미이행이 그 사고의 문제이고, 우리가 앞으로 고쳐나가야 할 부분은 그 부분입니다.

집체교육이 전체주의의 시대착오적 산물이라거나 지연학연주의의 증폭기라는 말도 그닥 설득력있는 의견도 아닙니다. 수학여행이나 오리엔테이션에 간다고 해서 우리 사회에 전체주의가 만연한 것인가요? 대학교 오리엔테이션은 교수나 학교에서는 후원만 하고 학생회/동아리 주도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아서 상명하복식의 제도권 교육이 아니라 학생자치 및 동아리문화에 익숙해지는 데 도움이 되는 면이 있습니다. 수학여행이나 오리엔테이션할 때 안전요원을 붙이는 제도를 만드는 것과 같은 보완책을 제시하는 것은 별론, 수학여행이나 오리엔테이션 그 자체를 폐지 운운할 것이 아닙니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전체주의 문화를 꼬집으려면 근본적으로 징병제로 인해서 모든 성인 남자가 군대에서 전체주의 교육을 받은 영향이 크므로 수학여행이 아니라 징병제를 문제삼는 것이 더 타당한 문제제기일 것입니다. 또 지연학연이 수학여행 같이 가서 오리엔테이션을 같이 가서 생기는 것이라고 단정할 수도 없는 터에 여기에 지연학연주의의 증폭기라는 딱지를 붙이는 것이 과연 합리적인 사고라고 할 수 있을까요.

학창시절 같이 소풍가고 같이 수학여행 갔던 친구들과의 추억이 나이 사십이 넘어가면서 희미해지기도 하였고 중간중간 왜 하는지 모르는 것들이 끼어들어가 있을지 몰라도 친구들과 함께 하던 여행이 즐거웠던 것만은 기억납니다. 학창시절 친구들과 같이 밥먹고 자는 몇박 몇일의 경험이 학생들에게 그렇게 쓸모 없는 것인지 그렇게 매도될 수 있는 것인지 의문입니다. 저 칼럼니스트는 집체교육이라는 이유로 수학여행, 수련회, 소풍 다 없애고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수업만 시키고 싶은 걸까요? 그렇다면 학교가 지식만을 위해서 수업만 듣기 위해 가는 학원과 다른 게 무엇일까요. 학교는 여러가지 상황에서 다른 사람들과 부딪히는 경험을 쌓게 해주는 작은 사회입니다. 이런 작은 사회에서 이미 수십년동안 이루어졌던 프로그램에는 나름의 존재의의가 있다는 사실을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수학여행이 수학여행비를 마련해 올 수 있는지 여부에 따라 빈부격차가 있는 아이들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줄 수 있다는 의견에도 솔직히 저는 반대입니다. 그래서 수학여행을 없애면 수학여행이 아니었다면 지방여행은 꿈도 못 꾸었을 아이들에게 지방여행의 기회는 더 이상 제공되지 못할 거라는 생각은 못하나요. 그나마 수학여행이니까, 가족여행 가는 것보다 경비가 덜 들어서 아이들에게 그 경험을 해보라고 수학여행에 아이들을 보내는 가정이 있다는 생각은 못하는 걸까요. 

수학여행이 무슨 죄며, 오리엔테이션이 무슨 죄입니까. 대책이 필요하다면, 교육이 필요하다면. 개선이 필요하다면, 정말 필요한 것에 집중해야 합니다. 이런 것에 집중하지 않고 수학여행을 폐지해야 한다는 식으로 문제해결을 바라다가는 정말 대형 사고가 일어나더라도  "인명 피해는 없었다"는 행복한 소식이 들려올 날은 요원할 것입니다. 

추신 : 저 칼럼에 있는 쓸데 없는 말보다 이 분의 글을 읽는게 훨씬 생산적입니다. 살아계신 분들에게도 관심을 기울이고 죄책감에 시달리지 않도록 지원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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